‘홍범도 역사 논쟁’에 정치권 시끌, ‘악몽’ 재현할까
‘홍범도 역사 논쟁’에 정치권 시끌, ‘악몽’ 재현할까
  • 이주리 기자
  • 승인 2023.08.2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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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닌 이념 논쟁

[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때 아닌 역사논쟁이 정치권 뿐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국방부는 육군사관학교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서 철거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육사 출신인 이종섭 국방부 장관 휘하 군 당국자들과 장성 출신인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 육사 총동창회 등은 홍 장군이 소련공산당 가입 이력이 있어 육사 정체성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독립운동 단체들은 독립운동가 흉상 철거가 "반역사적, 반민족적 범죄행위"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역사 교과서를 바꾸려도 심각한 역풍에 휩싸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의중이 담긴 것으로 알려진 이번 사태가 추석 민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홍범도장군 기념사업회 홈피캡쳐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등 독립운동가 5명의 흉상을 철거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사태가 시끄러워지자 홍범도 장군 흉상만 이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군은 지난해 11월부터 육사 생도 교육시설 앞에 설치된 독립운동 영웅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철거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그러다 논란이 커지자 홍범도 장군 흉상만 철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국방부는 입장문을 내고 "공산주의 이력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하여 기념하는 것은 육사의 정체성을 고려시 적절하지 않다"며 "홍범도 장군은 청산리 전투에서 같이 싸웠으나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만주로 돌아간 김좌진, 이범석 장군 등과는 다른 길을 간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 국방위원회 여당 간사인 3성 장군 출신 신원식 의원은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군 결정을 옹호하며 문재인 정부 때 홍 장군 흉상을 설치한 것이 "6·25 전쟁은 소련의 지원으로 북한이 일으켰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소련 공산당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석연치 않은 행보”

육사 총동창회도 입장문을 내고 "역사적 평가가 상반되는 인물에 대한 조형물 배치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특히 6·25전쟁을 일으키고 사주한 북한군, 중공군, 소련군 등에 종사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한 사실이 분명히 확인된 인물이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며 "더구나 이러한 인물의 흉상에 육사 생도들이 거수경례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육사 내 흉상과는 별개로 국방부는 용산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도 이전을 검토하고 있으며,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의 함명도 필요하면 변경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독립운동 단체들은 군이 국가 수호라는 본연의 임무를 등한시하고 때아닌 이념논쟁에 뛰어들어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규탄한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이종섭 장관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민족적 양심을 져버린 귀하는 어느 나라 국방장관이냐"며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으면 자리에서 퇴진하는 것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한 길"이라고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북한은 김일성을 무장독립투쟁의 최고 수반으로 선전해온 터여서 그보다 위대한 홍범도 장군 유해를 모셔가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의 봉환 사업을 방해했다"며 "홍범도 장군을 새삼스럽게 공산주의자로 몰아 흉상을 철거한다면 결과적으로 북한을 이롭게 하는 행동"이라고 질타했다.

독립운동가 선양 단체로 구성된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항단연)도 흉상 철거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항단연은 군의 독립운동가 흉상 철거 방침에 대해 "어떤 이유로도 부정할 수 없는 고귀한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고 말살하려는 의도는 반국가적, 반역사적, 반민족적 범죄행위라는 것을 국방부와 관계자들은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우원식 의원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흉상을 철거하는 것은 독립운동가에 모멸감을 심어주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현 정부의 지난 정부 지우기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 정치권과 후손들까지 가세하면서 논란은 한층 뜨거워지고 있다.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홍범도 장군(1868-1943)은 광복되기 전에 돌아가신 분이다”며 해방 이후 김일성의 북한 공산당, 6·25전쟁과 아무런 연관이 없음을 지적했다.

또 “공산주의 역사(마르크스 레닌주의)에 나오는 인물인 레닌을 방문해서 약소국인 대한민국 독립을 도와줄 수 있느냐, 항일무장 독립을 도와줄 수 있냐 이런 논의를 했던 상대방이다”며 “그분이 소련 제복을 입게 된 것도 항일 독립투쟁의 효과적인 진전을 위해서 했던 것”임을 강조했다.

이 전 의원은 이어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도 1962년 홍범도 장군을 서훈하는 독립훈장(독립장)을 수여하게 됐다”며 “인제 와서 분단, 북한이 생기기도 전에 소련 공산주의의 제복을 입었다는 것이 이념전쟁의 근거가 된다는 건 정말 소가 봐도 웃을 일이다”고 했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박근혜 정권 재현(?)

이회영 선생의 증손자인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5인의 흉상을 이전하겠다는 육사의 계획에 대해 후손으로서 분노를 느끼기보다는 어떤 사람들이 무엇을 위하여 그런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를 이해사회학적으로 해석하려 한다”면서 “우당의 역사적 동지로서 부당한 사상검열의 표적이 된 홍범도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종찬 광복회장의 아들로, 우당 선생의 증손자며 윤석열 대통령의 죽마고우로도 알려져 있다.

정치권에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여당 내에서조차 비판이 터져나오고 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독립운동가 흉상 이전 관련한 이번 논란은, 뉴라이트 사관 문제가 불거진 건국절 논란과도 맞닿아 있다”라면서 “이번 것은 헌법 전문에 정의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 계승’이라는 역사적 정체성을 너무 좁게 해석하는 것”이라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항일 독립전쟁의 영웅까지 공산주의 망령을 뒤집어씌워 퇴출하려고 하는 것은 오버 해도 너무 오버”라며 “6·25전쟁을 일으켰던 북한군 출신도 아니고 그 전쟁에 가담했던 중공군 출신도 아닌데 왜 인제 와서 논란이 되냐”고 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보수진영의 보편적인 지향점이라기보다는 일부의 뉴라이트적인 사관에 따른 행동"이라며 "국정 동력이 유한하고,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상황 속에서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운동가에게 모욕을 주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백지화를 주장했다.

학계와 시민사화에서도 ‘비상식적인 색깔론’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반공 이념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얘기다.

홍범도 장군의 생애를 연구해온 반병률 한국외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홍범도 장군에 대해 북한 체제와 연결해 ‘공산주의’라고 하는 것은 정말 무모한 일”이라며 “홍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것은 1927년으로, 1868년생인 그가 60세쯤 은퇴 시기가 됐을 때다. 일본군을 피해 독립운동을 함께하던 부대원과 소련에 정착한 홍 장군은 은퇴 이후 연금을 받는 등 생계 유지를 위해 입당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식민지 시기에 공산주의냐 자본주의냐 하는 것은 독립을 위한 수단 정도로 여겼던 이들이 많다”면서 “본질은 독립운동을 했다는 점에 있다”고 했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명예교수도 “독립운동가 흉상을 둔 것은 육사의 뿌리를 일제강점기에 무장투쟁했던 광복군 등에서 찾자는 의미였다”면서 “홍 장군을 공산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뿐더러 지청천 장군·이회영 선생·이범석 장군·김좌진 장군 등 나머지분들도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고 말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독재정권에서도 홍 장군을 색깔론으로 폄훼했던 적은 없었다”면서 “극우 유튜버나 주장할 만한 얘기를 정부가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불을 붙이면서 본격적으로 몰락하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것으로 알려진 이번 사태가 정치권에 어떤 후폭풍을 남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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