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사랑해요 연예가중계
거대한 한증막인 것 같아 이곳은, 이런 날씨를 경험한 적이 없을 몇몇은 이렇게 말했고, 가나에서 온 청년 몰은 그렇게 덥지는 않다는 듯이 늘 긴 청바지를 엉덩이까지 내려 입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돌아다녔다. 한여름 우즈베키스탄의 온도는 40도가 넘게 올랐는데, 습기가 전혀 없어서 그늘에 있으면 그래도 버틸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날씨였다. 그래도 낮시간에 어딘가로 움직이려면 태양 아래에 들어가야 했다. 아직 그늘과 에어컨 켜진 방에서 늘어져 있는, 전날에 술을 먹고 자고 있는 여러 나라의 친구들. 우즈베키스탄에 머무는 동안 그들과 한참을 놀았는데도 그들이 얼마나 거기에 있었고 또 얼마 후에 다른 곳으로 갈지는 잘 알지 못했다. 어쩌면 들었겠으나 기억에는 없다. 땡볕 아래 각자의 방식으로 쳐져 있는 그들의 모습이 내게는 시간 바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언제나처럼 그곳에서 더워하고 있을 것만 같은 얼굴들을 나는 거기에 두고 왔다.

루마니아인 유아나가 자기 우즈베키스탄 친구를 따라 이곳저곳을 좀 다녀보려고 하는데, 함께 갈 생각이 있냐고 물어 따라나섰다. 유아나를 따라나선 무리들이 불어났다. 아프가니스탄계 캐나다인 세이, 가나 친구 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일본 친구까지, 우리는 유아나가 이끄는 대로 그의 우즈베키스탄 친구 아부를 만나기 위한 길을 따라갔다. 언제나 느릿느릿하게 걸어 뒤처지는 몰에게 나는 조금 빨리 오라고 소리쳤고, 몰은 특별히 더워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날씨에 빨리 가서 뭐하냐는 식으로 궁시렁거리며 무리를 따라왔다. 유아나는 그 모습을 보고 웃었고, 세이는 건물들을 보며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이런 사소한 일과 대화들이 점차 우리 사이에 쌓이고, 또 그 사소한 일들은 잠깐이기에 잠깐 함께 하게 된 우리에게 큰 힘을 지니는지, 우리는 점차 하나의 무리가, 아니면 가족 같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서로를 장난식으로 까내리며 친해지는 방식은 여기라고 다르지 않았다. 서로 얼마나 격의 없이 놀릴 수 있는지로 우정을 가늠하는 방법이 꼭 좋지는 않지만, 그렇게 불편한 일도 아니었다. 우리는 인종과 국가로 자주 장난을 쳤다. 이를테면 이런 식. 동아시아인들이 여행을 다니며 ‘칭챙총’ 소리를 듣는 인종차별을 당한다는 나의 말에, 몰은 그 소리가 재밌었는지 이상하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내게 다가와 종종 칭챙총, 칭챙총했다. 평소라면 당연히 기분 나쁠 일이었겠지만 몰이 그렇게 하는 건 별 상관이 없었다. 나는 반대로 그에게 와칸다, 초콜릿, 하며 놀려댔고 그럴 때면 몰은 그냥 웃었다. 몰래 뒤통수를 치고 모른척하고, 갑자기 귀에 바람을 불고, 무슨 초등학생들처럼 몰과 나는 쉴 새 없이 장난을 쳐댔고, 유아나는 그걸 보고 웃었으며, 세이는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물론 나중에는 알았다. 세이는 그때 별다른 생각 없이 배고픈데 이따 뭐 먹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 친구들을 벤치에 앉혀 놓고 ‘사랑해요 연예가중계’라는 한국어를 따라 발음하게 해놓고 찍었던 동영상들을 나는 지금도 종종 찾아본다. 연예 프로그램 인터뷰에 나와 마지막에 어색하게 한국말을 따라하는 해외 연예인들처럼, 친구들은 어색한 얼굴로 어눌하게 한국어를 따라한다. 그 동영상이 얼마나 웃긴지, 아니 웃기다기 보다는 그때 우리가 얼마나 편하게 놀았는지, 그 영상을 보면 당장이라도 몇 년 전 우즈베키스탄에 돌아간 것만 같다.

철수 마켓의 얼굴들
유아나의 우즈베키스탄 친구의 이름은 아부였다. 아부는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는 의대생으로, 누가 보아도 성실하고 착한 자그마한 남자 애였다. 유아나와 아부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부는 어서 우즈베키스탄 곳곳을 숙소에 틀어박힌 여러 외국인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했다. 착한 홍보대사 같은 얼굴을 한 아부를 따라 타슈켄트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소련식 투박한 웅장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타슈켄트의 볼거리 많은 지하철을 탔다. 역마다 조금씩 다른 지하철 역 내부 풍경을 보기 위해, 지하철을 내리고 타고를 반복했다. 여전히 러시아어를 쓸 줄 아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많아, 아부가 말했다. 우즈벡어로만 수업을 하는 학교도 있지만 러시아어를 할 줄 알아야 좋은 학교에 가는 경우도 많다고, 자기도 러시아어를 할 줄 안다고 말하며 아부는 소련식 장식으로 빛나는 지하철을 설명했다. 그렇게 지하철을 지나 우리가 도착한 곳은 철수 마켓.

철수 마켓이 맞다. 한국인 이름처럼 친숙한 그 시장의 이름은 정확히는 ‘초르수 마켓’이었는데 다들 빨리 발음해 아무래도 ‘철수 마켓’으로 들렸다. 너무나 낯선 곳에 있는 익숙한 철수.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 운동장의 시장처럼 둥근 돔 안에 가게들이 둥글게 들어차 있었다. 좌판의 활기로 가득한 그 시장을 걸어다니며 몰과 장난을 치고 아부와 이야기를 하고 유아나가 루마니아에서 어쩌다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는지를 들었던 것 같다. 이야기와 동시에 내 눈앞에는 타슈켄트 상인들의 친근하고 투박한 활기가 그대로 펼쳐졌다. 이곳에 이주한 고려인들이 김치 담글 배추가 없어 만들었다는 당근 김치도 실제로 보았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느라 고려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동아시아계인 듯한 얼굴이 군데군데 보였다.

고려인이 아니더라도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의 얼굴은 언뜻 보면 동양인 같고, 언뜻 보면 서양인 같다. 이 바보같은 구분법은 당연히 이상하다. 세상에는 유럽인과 동아시아 얼굴 두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굳이 두 얼굴을 양극단에 둔다면 그 사이에 있는 얼굴들도 꽤 많다. 실제로도 유럽과 동아시아의 사이에 있어 그런지,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유독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서양계인지, 동양계인지 확신할 수 없는 얼굴의 윤곽들, 눈의 크기, 이마뼈의 생김새들이 많았다. 세상에는 다양한 얼굴이 있다는 것을, 세계 이곳저곳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철수 시장을 걸으며 새삼 느꼈다.

아부를 따라 이슬람 사원에도 가고, 미술관에도 가고, 음식점에도 가고 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음식점인 것 같다. 아부가 정말 맛있는 곳이라고 데려간 그 음식점은 ‘필라프’를 파는 곳이었는데, 이곳의 필라프는 ‘거의 몇 백인 분은 할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솥에 쌀과 재료를 붇고 끓여 만드는 일종의 볶음밥이었다. 어디에 어원을 둔 말인지 ‘필라프’는 대개 쌀을 의미했고 나라마다 정확히 지칭하는 대상은 달랐다. 터키에서는 그냥 밥을 의미했는데 이곳에서는 볶음밥. 내게 필라프는 어디 서가앤쿡 같은 곳에서 시켜 먹어 볼 법한 이국적인 볶음밥이었는데 여행을 하며 만난 다양한 필라프 덕분에 내 안의 ‘필라프’라는 말은 알아서 넓어졌다.
그중 우즈베크스탄에서 먹은 필라프가 최고의 필라프라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확실하다. 맛을 설명할 수 없다. 수 백인 분은 족히 볶이고 있을 그 거대한 솥에서 내게 한 접시로 꺼내온 그 볶음밥을 먹으면서 나는 타슈켄트에 잘 왔다고 다시 한번 생각하며 사랑스러운 눈으로 아부를 쳐다 보았다. 감칠맛이 그대로 살아 있는 그 촉촉한 밥을 씹으며, 친구들과 나누었던 사소한 대화들을 기억한다. 그 작고 편안했던 날들은 이미 지나가 없지만 여전히 그날들은 시간 바깥에 그대로 남아 누군가 다시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