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도 문단속이 필요하다
마음에도 문단속이 필요하다
  • 김혜영 기자
  • 승인 2023.12.30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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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탐방기] 10회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연말을 맞아 오랜만에 인생탐방기 원고 노트를 꺼냈다. 이것으로 열 번째 사용 중인 시리즈의 이름이 매번 부끄럽다. 삶을 그리 많이 산 것도, 잘 아는 것도 아니면서 거창하고 촌스럽게 작명해 버렸다. 당시엔 영화제 탐방기나 여행기를 주로 쓰고 있었다. 정확하게 분류되고 명명될 수 없는 소재의 글들을 묶을 새로운 시리즈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익숙한 단어인 ‘탐방기’ 앞에 ‘인생’을 붙였다. 이 과정을 소상하게 적은 1편에 “결국 모든 탐방은 나에게서 출발해 나를 되돌아보는 것으로 끝난다. 탐방이야말로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내 일상과 고민 전부를 담아낼 좋은 단어다”라고 썼다. 뜻은 번지르르하다는 것에 위안하며 딱 올해까지만, 10회를 맞춘 이번 원고까지만 사용하고자 한다. 시즌제 시대에 발맞춰 다음엔 새로운 시즌과 새로운 이름으로 찾아올 것이다. 그때는 부디 더 아름다운 이름을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위클리서울/ 정다은

경계가 한 순간에 무너졌다

올해도 탐방, 아니 솔직히 방황은 어김없었다. 서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후, 유일한 동료와 처음 가진 신년회 술자리가 시작이었다. 사계절이 지나는 동안 얼굴을 본 것은 면접 한 번이 전부였고, 그마저도 마스크를 낀 상태였다. 교대 근무였으므로 업무에 관한 특이 사항 말고는 사적인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다. 늘 멀리서 그은 선을 지켰다. 친해지기 싫은 것이 아니라, 굳이 친해질 이유가 없었다. 서로가 좋은 동료라는 것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 깊이 느꼈다. 아무도 시킨 적 없지만 다음 사람이 고생하지 않도록 할당량을 초과하며 일했고, 갑작스러운 휴일을 내지 않으려 노력했으며, 상대가 어떤 사정이 생기든 대체 근무를 승낙했다. 서로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했으니 성애적 감정에 따른 배려는 아니었다. 근무자로서의 책임감과 동료를 위하는 가치관이 운이 좋게도 동일했다.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이런 동료를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으로 참았다.

마지막 근무 날이 되어서야 긴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동안의 고마움을 일일이 나열하면 너무 부담스러울 것 같아 줄이고 줄인 분량이었다. 도울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해도 된다는 말을 그는 덥석 물었다. 내가 전공하는 분야에 관한 조언을 얻고 싶다고 했다. 한참 씨름했지만 주변에 관련 전문가가 없었다는 말에 어깨가 올라갔다. 좋아하는 분야의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기뻤고, 앞으로 볼 일이 없으니 종지부를 아름답게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의와 배려를 나누면서도 깔끔했던 사무 관계처럼 술도 마시지 않고 간단히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친하지 않았을 뿐, 유대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편안한 분위기는 계속 긴장과 경계를 늦췄다. 안주는 지나치게 맛깔났고, 대화는 쫄깃하고도 편안했다. 같은 업무를 했던 건 둘 뿐인지라 사소하게 짜증 나는 일과 근처 가게 직원의 웃긴 점, 화장실 지름길과 소소한 일탈 방법 등을 나누며 벅차올랐다. 야, 너도 그랬어? 존댓말은 금방 휘발되었고,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깔깔 웃으며 서로의 손뼉을 마주쳤다.
 

내가, 나 자신에게도 실수했다

빈 하이볼 잔이 천천히 식탁을 채우다 소주병과 맥주병이 들어섰다. 우리가 비슷한 종류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부터 온갖 종류의 수다를 떨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상대가 누구든 그런 환경과 조건 속에 있다 보면 과장된 마음을 나눌 수밖에 없다. 기대하지 못한 즐거움에 취한 나는 당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덕분에 얼마나 편안했는지를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그 또한 이렇게 술자리를 갖는 것이 처음이라며 동료로서의 나를 추켜세웠다. 다른 가게 직원이 내가 일하는 모습을 칭찬했던 일화도 전해주었다. 마음이 완전히 풀어진 그 무렵부터 기억이 듬성듬성 끊겼다. 서로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고 놀렸던 장면만 이따금 떠올랐다. 그리고 하나, 앞으로 나를 좋아해도 되느냐는 다정한 물음이 마지막 기억이다. 나는 무책임하게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사랑의 시작으로 오인할 만한 귀책이 컸기에 자책과 미안함으로 서두른 귀갓길 내내 어지러웠다.

잠깐 꿈을 꾼 것 같았다. 조금 덜 취했더라면, 조금 더 조심했더라면. 신이 나서 경박스러워진 언행도 뒤늦게 부끄러워졌다. 술에 취한 나의 가벼움이 조심스럽게 쌓아 올렸던 신뢰를 우르르 무너뜨렸다. 동료와의 사이뿐만 아니라, 내가 믿고 기대하던 나 자신,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크게 실수한 것이다. 나에 대한 실망으로 체한 느낌이 들었다.

버스에 탄 직후 사과 랠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그는 이후로도 조심스러운 문자를 몇 번 보내주었다. 이렇게 덧붙이는 것도 우습지만, 나를 너무 좋아해서가 아니라 술기운의 오해로 멀어지기는 싫은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그가 싫어서가 아니라, 나의 경솔함과 그로 인한 결과들이 불편했다. 그날 마주한 내 모습을 당분간은 회피하고 싶었다. 그 마음을 상세하게 설명하며 더 이상 연락을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존중해 주었다.

훗날 친구들은 그런 일로 괴로워하는 연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가만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주는 것은 많은 위로가 됐다. 다만 대학원을 다니며 건강에 무리가 갈 정도로 최선을 다해 일했고 완벽한 동료 사이를 형성했다는 것, 그걸 다른 가게 직원들에게도 인정받았다는 자부심이 컸다. 그 전의 첫 사회생활이 후회투성이였기에 더욱 조심하고 노력했던 시간이었다. 처음 계획했던 대로 술을 마시지 않고 천천히 친밀해졌다면 정말 좋은 동료 혹은 가까운 친구로 남을 수 있었다. 소중한 인연을 그르쳤다는 것, 내가 열심히 노력했던 시간을 오점으로 마무리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잘못의 반복만큼 쉬운 게 없다

그렇게 2023년을 시작했다. 이래서 첫 단추가 중요하다고들 하는 걸까. 은근히 충동적이고 무심한 나의 모습을 미처 돌아보지 못한 채 온갖 신년회가 이어졌다. 친구의 지인 H가 술을 사는 자리도 냉큼 물었다. 그를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좋은 사람이고 자신을 잘 챙겨 주었다는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전해 들은 차였다. 친구로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매력이나 품성으로 그녀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친한 사이에 들어앉은 것인지 궁금했다.

평소 친구의 친구를 만나는 일을 즐기는 편이지만, 그날은 설렘보다 긴장이 컸다. 대학가의 저렴한 술집만 다니던 학생에게 호화로운 안주와 전통주가 끊이질 않고 테이블을 메우는 풍경은 무척 당황스러웠다. 두 사람이 익숙하게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최선을 다해 고개를 끄덕이고 영양가 없는 말을 덧붙였다. 그들의 노력과 배려에도 편안하지 않았다. 친구가 사정이 있다며 일찍 일어서는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만 좌우로 굴려대며 머뭇거렸다. 이 비싼 자리를 계산하는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따르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았다. 어쩐지 신이 난 것 같은 친구의 뒷모습을 허망하게 바라보며 초면인 H와 둘이 자리를 옮겼다. 2차는 내가 계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배려로 근처 호프집을 추천받은 뒤에야 마음에 얹혔던 큰 바위가 내려갔다. 차갑도록 시원한 맥주를 한잔 마시는 순간, 뜨거운 술기운이 머리끝까지 올라 휘감았다. 전까지는 분명 멀쩡했다. 추측하건대, 주종이 바뀌고 긴장이 풀린 탓인 것 같다. 속수무책으로 언행의 제어 능력이 떨어져 버린 나는 친구를 챙겨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연거푸 했다. 그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걸 몰랐다.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도 술과 함께일 때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지금은 안다.

감사 인사를 건네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자연스럽게 마음이 뭉그러졌다. 그 과정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새 각자의 힘들었던 시절을 털어놓고 있었다. H는 이른 나이부터 빚을 갚고 부모님의 생계까지 책임지며 치열하게 살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훔쳤다. 함께 고생이 많았다, 잘 버텼다며 위로했다. 서로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는 알지 못한 채로 몇 번의 만남이 이어졌다. 그날 택시로 집을 데려다주었고, 잘 들어갔는지 전화를 걸어 묻고, 다음날 영화를 보기로 했으니 썸의 시작이었다. 그동안 내 마음을 치열하게 고민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만난 횟수가 적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일단은 더 만나보기로 했다. H는 무엇이든 빠르게 결정하는 편이었다. 어영부영하다 그의 속도를 따라갔다. 쉬는 날도 적고, 바쁘게 일만 하는데도 만나겠냐는 물음에 괜찮다는 대답밖에 하지 못했다. 이미 그의 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른의 연애는 원래 이런 것이겠지. 대충 합리화하며 얼렁뚱땅 연애를 또 시작했다. 첫 단추는 물론, 모든 단추를 잘못 끼웠다.

 

ⓒ위클리서울/ 정다은

술이 계속 늘었다

H는 일주일에 다섯 번 술을 마시는 사람이었다. 몇 없는 여가 시간에 술만큼의 보상과 위로가 없었다. 그와 만나는 내내 같이 잔을 기울였다. 술로 후회한 것이 무색하게 또 술을 마셨다. 취할 정도로 마시지 않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너무 자주 마시는 것 같다는 언니의 걱정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술이 익숙해졌다. 애주가여도 서로의 만취 상태를 보여준 적 없던 친구들과도 마시는 양이 늘어갔다. 그러다 친구에게 아픈 실수를 했다. 서툰 사과를 받아주고 따끔하게 혼을 내기도 했던 그들 덕분에 그제야 음주와 선을 그을 수 있었다. H도 함께 마시지 않아도 괜찮다며, 거절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진지한 충고를 건넸다. 사실 누구도 강요한 적은 없었다. 일상의 작은 선택들도 단호하게 결정하지 못한 것은 나에 대한 이해와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내 선택이 틀리면 어떡하냐 던가 조언을 구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다. 예상치 못한 일들로 삶이 불안정해지면서 이십 대 초반으로 퇴화한 시기였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와 달리 멀쩡한 척과 괜찮은 척은 할 줄 알았다. 책임져야 하는 일들은 야속하게 늘어가는 나이여서 여유를 갖고 빠른 진단과 결단을 내리기도 어려웠다.

그동안 H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했다. 우리 사이가 이대로 괜찮은 게 맞는지, 자신에게 솔직한 것이 맞는지를 계속 물었다. 술에 취할 때마다 전화를 걸어 너는 사랑을 모른다고도 말했다. 바쁜 그에게 맞춰주는 연애를 하던 나는 그저 억울했다. 뭐가 문제인지를 알 수 없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그만의 애정 투쟁으로 여기며 가볍게 넘겼다. 헤어진 뒤에야 나는 H를 사랑한 것도, 좋아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좋아한 것은 사람이라는 존재이고, 가장 가깝게 함께할 수 있는 연애라는 양식이었다. 그에게 맞춰주고, 좋아할 법한 모습을 흉내 내거나 무리했던 것은 그 연애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언제나 사람과 관계, 친구와 연인에게 취약했다. 동료와의 술자리 또한 그로부터 비롯된 문제였다.
 

언제까지나 사랑할 것이다

연애를 끝낸 6월, 남은 하반기는 반드시 달라지겠다고 결심했다. 술은 웬만하면 거절했고, 오래된 친구들과의 자리에서는 몸과 마음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의 한참 앞에서 멈췄다. 모든 게 잘못되고 나서야 해결 방법이 보였다. 새롭게 만난 동료들은 어째서 이별 이후가 더 건강하고 행복하냐며 궁금해했다. 일단 껴안아 축하하고 위로하는 그들과 진심으로 차근차근 관계를 맺어나갔다. 안정적인 사회생활과 매달 들어오는 월급은 불안정했던 내겐 특효약이었다. 매일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리저리 흩어진 자아를 모아 보듬으며 다시 견고하게 뭉쳤다. 그러는 동안 또 다른 인연도 찾아왔다. 당분간 연애를 쉬겠다고 다짐했지만, 마음이 훅 끌려갔다. 연이은 연애의 실패를 지켜본 엄마는 걱정하고 만류했다. 이 상황이 가장 걱정스러운 건 나였다. 누구보다 조심스러웠고, 신중했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자신이 있었다. 타인의 걱정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차분히 설득해 안심시켰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를 좋아하면서도 용기와 여유를 반드시 확보하는 일이었다. 방황이 끝나고 자유와 사랑을 만나면서, 한 챕터를 덮고 다시 탐방을 해나갔다.

회복의 시기였던 하반기부터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길을 헤맬 때가 많다. 해가 일찍 지는 시기에도 가로등은 늘 늦게 켜진다. 방황과 탐방은 평생 숙제처럼 따를 것이다. 올해 내가 저지른 무수한 실수들은 저마다 달라 보여도 같은 근원지에서 발생했다. 더 빨리 깨달았다면 연이은 잘못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후회와 반성의 마음으로 먼지가 가라앉지 않도록 바람 불어가며 살뜰하게 지켜보고 있는 하나의 원칙이 있다. 나의 중심을 지키지 못하고 흔들리는 순간엔 일단 멈춰야 한다는 것. 바쁜 와중에 지체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성찰 없는 직진은 그만큼의 유턴을 반드시 몰고 온다. 이제 나의 고삐를 꽉 쥐고 익숙한 구간에서 서두르지 않도록 속도를 줄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사람을 사랑하는 나의 저주는 이제 동력으로 변모했다. 아주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천천히 달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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