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학문을 제대로 알아준 정약전
다산 학문을 제대로 알아준 정약전
  • 박석무
  • 승인 2024.01.08 11: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위클리서울=박석무] 형 손암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귀양살이 하고 아우 다산은 강진에서 귀양 살았습니다. 동복의 두 형제는 네 살 터울, 형제지기로서 깊고 넓은 우애의 정으로 고달픈 유배살이를 해냈습니다. 기막히는 액운을 맞아 비통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두 사람의 높은 학문적 수준 때문에 서로를 격려하면서 고달픔을 견디어 다산은 끝내 학문적 대업을 이룩해냈습니다. 학자가 저술하여 단 한사람의 제대로 읽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다행한 일이라고 여겼던 다산, 대학자 친형이 자신의 책을 읽고 극찬에 가까운 평가를 내렸으니 그 얼마나 흡족하게 여기던 일이던가요. 

 

박석무 다산학자 ⓒ위클리서울 DB
박석무 다산학자 ⓒ위클리서울 DB

유교 경전에서도 『주역(周易)』은 참으로 어렵고 난해한 학문입니다. 다산은 유배살이 초기부터 『주역』 연구에 온 정성을 바쳤습니다. “내가 갑자년(1804) 동짓날(계해년, 1803) 강진 유배지에서 『주역』을 읽기 시작했다. 이해 여름에 비로소 차록(箚錄)해놓은 공부가 있어서 겨울이 되어 완성하였는데, 모두 8권이다. 이게 갑자본이다. 그 다음 해에 개정하여 다시 엮었는데 역시 8권, 이게 을축본이다. 다음 해에 모두 개정하여 봄이 되어 끝마쳤다. 모두 16권이니 병인본이다. 빠지고 잘못된 점이 많아 아들과 제자의 힘을 빌려 완성했으니 정묘본(1809)이다. 이것도 정밀하지 못한 부분이 많아 무진년(1808) 가을 다산초당에 있으며 둘째 아들의 도움으로 24권으로 탈고 했으니 무진본이다. 이 책이 이른바 무진본 『주역사전』이다.”

다산은 뒤에 『상계사전』을 완성했으니 모든 책 중에서 그 두 책만은 세상에서 영원히 전해지기를 간절하게 바랐던 책이었습니다. 그런 『주역』, 얼마나 값진 책이었으며 다섯 번이나 고치고 또 고쳐 완성했을까요. 책을 저술하고도 알아줄 사람이 없는 안타까운 신세, 마침내 흑산도의 형에게 책을 보냈습니다. 책을 읽고 깜짝 놀란 손암, 감동을 이기지 못하는 마음으로 책의 서문을 지어 위대한 저술에 격찬을 아끼지 않는 글을 썼습니다. 손암의 서문, 명쾌한 논리에 웅장한 문장의 수준 높은 서평이었습니다. 아우의 글을 형이 그렇게 정확하게 평가하여 탁월한 서평을 지었으니, 그들 아름다운 형제의 학문에 탄복을 금할 수 없습니다. 

“나는 약용을 애초에는 재사(才士)로 여겼다. 장성해서는 벼슬할 때 문장경술사(文章經術士 )라고 여겼다. 본격적으로 정치를 할 때는 재상감이라고 생각했다. 귀양살이하며 『주역사해』를 지었는데, 나는 처음에는 놀랐고, 중간에는 기뻐하였으며, 끝에 가서는 무릎이 절로 굽혀지는 줄도 알지 못하였으니, 약용을 어떤 부류의 사람과 비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글을 시작하여 주역 공부의 높은 수준에 감동되어 저절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니, 그 학문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산의 삶을 정리하였습니다. 만약 높은 벼슬에 올랐다고 해야 한기(韓琦)나 부필(富弼)같은 송나라 재상 정도일 정도이니 그런 사람이야 세상에 많지만, 몸소 옛 성인의 뜻을 이으려는 공을 맡아 끊어진 실마리를 찾고, 미쳐 날뛰는 무리들을 막으려는 사람을 위정자들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등용시키는 허락을 않게 되어 있다면서, 다산이 뜻을 얻지 못한 것은 곧 자신에 있어서 다행한 일이요 우리 유학계에 있어서도 다행한 일이라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정조가 오래 살고 다산이 뜻을 펴 좋은 세상을 만들었으리라는 희망과는 다르게 유배살이가 다산의 큰 학문을 이룩하게 했노라고 오히려 높이 평가한 사람이 손암이었습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